부패의 원흉을 공개
번호 14 작성자 해직 공무원 작성일 2005-03-26 조회 954
   첨부화일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유시민 선친, 일제치하 '훈도' 경력 확인 백부는 일제 면장
~~~~~~~~~~~~~~~~~~~~~~~~~~~~~~~~~~~
서울대 프락치 폭력사건 주범 , 경제학 저서 표절 의혹, 당비 5개월 미납 환수
~~~~~~~~~~~~~~~~~~~~~~~~~~~~~~~~~~~~~~~~~~~~~~

나는, 대전 e조은뉴스의 송 모 대표기자가 나선 유시민의원의 과거사 현장취재를 목도했다.

나는 송 기자를 도와 경북교육청 중등교육과를 취재했다.

어쨌든 유태우씨는 일제하 훈도를 경력으로 삼아 미 군정시대와, 대한민국의 교사, 교장으로 승진하면서 교장을 마지막으로 퇴임하기에 이른 것은 숨길 수 없은 사실임이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다.

유시민의원이 부친의 과거사를 자기 변명으로 합리화시키려 들었다면, 이는 유의원 본인이 그동안 논객으로 쌓아올린 유명세를 이용하여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되었고, 과반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실력자로 부상한 지금이라도 자신의 부친에 대한 최소한의 자료라도 연구하고 변명 했어야 했을 것이다..

진실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것이 세상사의 이치라지만, 같은 소재를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는데 능수능란한 모습을 보이는 유의원의 모습을 상기하면 카멜레온의 생존술을 뻬어 닮은 자태에 그냥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다. 실로 가상한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일제하 훈도(訓徒)란 당시 일제 교육수칙상 제1의로 삼은 "덴노헤이까(天皇陛下)에의 충성을 가르치는 선봉장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맹세치 않은 사람이 발을 붙일 수 없는 일제수호를 위한 신성불가침의 자리였다.

1940년 대 당시는 죽으나 사나 내선일체를 부르짖으며, 만주를 병탄한 후 중국을 넘보던 시기였고 대 일본 제국이란 명칭에 걸맞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시대였으며 이 시대에 일제의 교육은 식민지 국민들을 황국신민화 시키려는데 혈안이 되었던 시대였다.

즉 황국신민화를 의식화시키는데 둘 째 가라면 서러운 직책, 그것이 소위 훈도였으며 그들의 사명이 일제의 영광이었다.

이러한 사실이 분명함에도 유의원은 지금 자신의 논리로 비약에 비약을 거듭하며,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자는 이런 사실로비춰볼 때 그의 박명한 재질을 서러워 한다. 그렇게밖에 나설 수 없는 처량한 행색을 차마 정색하고 보기가 민망할 지경이다.

유장하게 늘어진 버들고을에 노랑새가 살았단다
시도때도 접어두고 홀홀날며 살았단다
민심이 하수상하니 돌아간들 어떠리

관련기사

유시민 선친 일제하 교사, 백부는 면장


유시민, 개혁당 당비 빌려가 안 갚았다
~~~~~~~~~~~~~~~~~~~~~~~
개혁당 지도부 유시민 의원 보궐선거용 당비 대여금 반환 촉구

편집부

유시민 열린우리당 의원이 개혁당 대표 당시 당비를 대여금 형식으로 빌려 아직 갚고 있지 않다고 현 개혁당 지도부는 당원 게시판에 공개했다. 유시민 의원은 2003년 1월 20일, 당시 보궐선거 출마를 준비하면서 당으로부터 2070만원을 빌려갔다는 것이다. 그 뒤 열린우리당으로 이적한 이후에도 그 금액을 개혁당에 갚지 않아, 개혁당 지도부는 지난 7월 28일 유의원에게 내용증명을 보내놓은 상태이다.



"유시민, 폭행, 고문 현장에서 지시했다"
~~~~~~~~~~~~~~~~~~~~~~~~
유시민에 의해 프락치로 몰려 고문당한 피해자 전기동씨 인터뷰


지금부터 꼭 20년 전인 1984년 9월 서울대학교내에서 당시 일부 학생단체간부들에 의해 민간인들이 불법체포, 감금, 폭행, 고문, 자백강요 등을 당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의 피해자 가운데 전기동씨(1955년생, 현 관악구청 근무)를 기자와 김아름기자, 모 인터넷신문 편집국장과 함께 사당전철역의 한 찻집에서 인터뷰 했다.

지금 온통 나라가 과거사진상규명이나 국가보안법폐지 등으로 나라가 시끌벅적한 이때 어려운 결단으로 인터뷰에 응해주신 전씨의 용기에 감사를 하고, 이 인터뷰를 통해 유시민 등에 의해 저질러진 과거사 즉 20년 전에 있었던 '서울대 일부 학생단체 간부들의 민간인 불법감금, 폭행, 상해, 고문, 자백강요 등에 의한 반민주적 인권유린 폭거사건'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이 사건 또한 과거사 진상규명 조사 과정에서 반드시 그 진실이 바르게 밝혀짐으로써, 가해자임에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아직도 진실을 호도하고 거짓 미화하는 뻔뻔한 행태가 있다면 바로 잡혀야 할 것이라고 본다.


브레이크 뉴스


유시민 경제학저서 표절 의혹 제기돼
~~~~~~~~~~~~~~~~~~~~~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 있는 아이디어의 표절 주장
~~~~~~~~~~~~~~~~~~~~~~~~~~~~~~
유시민, 징역 받고도 '민주화 유공자' 주장
~~~~~~~~~~~~~~~~~~~~~~~~

[선거법위반]유시민 의원 200만원 구형
~~~~~~~~~~~~~~~~~~~~~~~
[한겨레 2005.03.14 17:37:00]

[한겨레] 선거법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열린우리당 유시민 의원이 벌금
200만원을 구형받았다.

검찰은 14일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제1형사부(재판장 장진훈) 심리로 열린 유시민
의원의 결심공판에서 “유 피고인이 17대 총선에서 선거공보물에 허위사실을
기재해 선거법을 위반했다”며 200만원을 구형했다.

지난 84년 ‘서울대 프락치 사건’에 연루돼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유 의원은
지난 17대 총선 선거공보물에서 이 사건과 관련해 “다른 사건 관련자들이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명예회복을 한 사건”이라고 기재해 지난해 10월 선거법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유 의원의 선고공판은 오는 23일 열린다.

고양/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 한겨레(http://www.hani.co.kr),

@@@@@@@@@@@@@@@@@@@@@@@@@@@@@@@@@@@@@@@@@@@@@@@@@@@@@@@@@@@

“鄭장관 학창시절 숙식비 내놔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때아닌 소송에 휘말렸다.

정장관의 숙부 정모씨가 지난해 ‘35년 전에 먹여주고 재워준 대가를 내놓으라’고 지급청구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지난 18일 전주지법 206호 조정실에선 이 소송과 관련한 민사11단독(이민호 판사) 심리가 열렸다. 그러나 조정사건에 정장관측은 변호인을 대리인으로 출석시켰지만 원고인 정장관의 숙부가 출석하지 않아 조정은 다음달말로 연기됐다.

이날 심리는 지급청구소송한 정장관의 숙부 주장대로 재판부가 지난해말 지급명령을 결정해 통보하자 정장관측이 시효가 지났고 사건대상도 아니라는 점을 들어 이의신청을 제기해 열린 것이다.

원고 정씨는 정장관이 중·고교 시절 자신의 집에 기거하면서 소비한 쌀값과 그동안 이자 등으로 7천5백만원을 받아야 한다며 지급청구소송을 냈다.

이날 조정에서 재판부는 정장관측에 “피고가 시효만료를 주장할 경우 원고 패소가 확실하지만 용돈이라 여기고 주라”는 권고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장관측 변호인은 “당시 정장관은 미성년자였고 사실관계에 대한 공소시효도 지났는데 쌀값 등을 환산해 돌려달라는 것은 황당한 일”이라며 “의정활동과 국사에 전념하면서 친·인척 관리를 깔끔하게 하는 데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 것 같다”고 말했다.

〈전주|박용근기자 yk21@kyunghyang.com〉

입력: 2005년 03월 20일 17:59:25

====================================================================

정동영 부친, 일제 농민수탈의 앞잡이 친일에서 반공까지

수탈의 상징 조선식산은행 산하 금융조합 서기 거쳐 26세에 면장

그러나 신 의장의 문제는 연좌제 때문이 아니다.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공격하는 최대의 근거가 그녀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으며 지금도 이들은 그 무기의 사용을 위해 칼날을 가다듬고 있는데 국회에 제출된 친일 경력의 근거를 일본군 중위이상으로 한 것을 보더라도 이는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신의장은 자신의 아버지인 신상묵씨의 친일 경력을 숨기기위해 1940년 청풍소학교 교사직을 그만 둔 뒤부터 1946년 경찰에 입문하기까지 약 6년간의 이력을 해명하지 못했고 그 이력에 대하여 추측이 난무하자 경찰은 아니었다는 궁색한 해명으로 일관하다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이같은 도덕적 타락은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다는 것이 일반 국민들의 정서인데도 이러한 국민들의 정서를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천정배 원내대표 등 열린우리당 당권파들은 연좌제 운운으로 사태를 미봉하려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인터넷 언론인 진보누리에 정동영 장관 부친에 대한 친일 의혹이 거론되었다. 그 내용을 일부 인용한다.

"지주의 아들로 태어난 정진철 면장은 당시 순창 근처에서 가장 좋은 명문 '남원고보'를 졸업하고, 일본제국주의 조선 착취 최일선기관인 '금융조합 서기'를 무려 長長 5년이상 황국신민으로써 충성을 다하여 소작농민의 피를 빨아먹으며,열심히 황국신민의 역할을 다 하다가 해방을 맞이한다. '금융조합장'의 위치에 근접했었다고 볼 수 있다.

정진철 면장이 금융조합서기로 근무하던 시기는, 중일전쟁 발발 이후의 시기로 산업동원령이 내려진 상태로, 전 농민의 80%가 소작농으로 전락하였고, 조선반도에서 산출되는 산출미의 60%이상을 공출로 착취하여, 반도의 농민들은 일본제국주의의 가혹한 착취에 견디다 못해, '개나리(?)'봇짐을 메고 처자식 이끌고 일본제국주의가 전쟁동원을 위해 설치한 경의선, 경원선 철도를 타고 만주벌판 서간도, 북간도로, 그리고 징발, 징용에 이끌려 대한해협을 건너, 북해도(홋카이도)로, 인도지나 전선으로 끌려 가던 시절이었다.

금융조합 서기는 아무나 하나? 지금도 대한민국의 짠(?) 대기업중 하나인, 효성그룹 창업주 조홍제는 경상도 함안(정확히 하면..군북) 친일매국 '금융조합장' 출신이다. 금융조합장 출신답게 기업풍토를 짜(?)게 운영한다. 정진철 면장도 '덴노 헤이까(천황폐하)께서, 美國의 맥카터에게 항복하지 않았다면, 대그룹 창업주가 되었을 수도 있다...비단장수 '구'서방(L모그룹), 정미소와 천석꾼 출신 (S그룹) 창업주에 뒤지는 바 없는 가문이었다.

일본제국주의의 산업수탈과 전쟁 동원이 극에 달하던 1940년대 초에는 농민의 98%가 거의 강제로 금융조합에 가입하게 되었고, 산업 동원의 일선기관 노릇을 충실히 하게 되었으며 향토 지방의 토호들의 기득권을 강화해주었었는데(1937년 47%의 금융조합 조합원은 전원 지주로만 구성), 결국 금융조합은 지방 최고의 파워 엘리트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위 기사에도 언급되었지만 식민지 수탈을 위하여 조선총독부는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조선식산은행'을 설립하게 되는데 이를 당시 좌(左)동척, 우(右)식산이라고 불렀다.

조선총독부는 이 양 회사를 통하여 상업과 농업이 거의 전부였던 조선의 산업을 지배했던 것이다. 당시의 '금융조합'이란 식산은행 산하의 농민조합으로서 조선 농민들을 가혹하게 착취하던 착취기관이었다.

즉 정동영 장관의 부친이 이 기관의 직원으로 일제 말엽에 5년 동안 근무했다는 것은 그의 친일 근성을 미루어 가늠해볼 수 있는 근거로 충분하게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일제가 식민지 조선에 행했던 악행들의(창씨개명, 신사참배, 한글말살정책, 징병, 징용, 학병동원 등 내선일체 정책강화) 거의 대부분이 그 시기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 초기에 항일인사였던 대다수의 지식인들도 이 시기를 넘기지 못하고 친일파로 전향하였던 것이며 심지어 3.1독립선언서를 쓴 것으로 알려진 최남선도 이 시기에 골수 친일파로 전향했었으며 대표적 친일시인 서정주의 저 유명한 '마쓰이 오장'이란 대표적 친일찬가가 나온 시기도 바로 이 시기이다.

소설가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에 언급된 '동척'과 '식산은행'의 만행들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의 대표적 평야지대인 김제, 만경평야의 알토란같은 미곡들이 '동척'과 '식산은행'의 수탈로 착취되어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실어날랐다는 사실은 지금 생존한 많은 사람들의 증언으로 들을 수 있다.

이 시기에 그것도 전북 순창지역에서 금융조합 서기를 5년 동안 지냈으면서도 일제를 위하여 농민수탈에 앞장서지 않았다고 강변한다면 이를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한 약관 26세에 면장을 지낼 정도의 동량이라면, 당시 이승만 정권의 인사정책이 총독부 봉직 경력자 우선이었던 점으로 미루어볼 때 정진철 씨의 친일 경력은 새삼 거론치 않더라도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을 당선시킨 민주당을 분당시키며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는데 1등 공신이었던 '천,신,정' 3인이 갖고 있던 트레이드마크가 정치개혁이었으며 민족정기 올바로 세우기라고 할 때, 이들은 그만큼 자신들의 도덕성에 자신감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신기남 의장의 부친이 친일파였고 그가 헌병 오장으로 근무하면서 독립투사들을 고문했었다는 증언들이 잇다르고 있는 이 때, 신 의장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숨겼던 파렴치함이 드러나므로 그의 정치생명은 중대한 위기를 맞고 있다.

이 즈음에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부친에 대한 친일 경력까지 거론된다면 창당주역이요 제 1대 직선 당의장을 역임한 그의 위치로 보건데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도덕성은 회복할 수 없는 치명적 상처를 입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진보하며 150석 거대여당으로 현재 이 나라의 정치를 주도하는 정당이라하더라도 그 정당의 존망이 국가의 존망과는 무관하고 진보하는 역사에서 열린우리당이 기여할 부분이 없다면 우리는 과감하게 이 정당 지도부들에 얽힌 부도덕성을 파해쳐야 하고 그러므로서 그 정당이 해체되더라도 역사발전에 기여하게 된다면 우리는 이 길을 가야할 것이다.


관련기사


임종석, 김희선 구하러 육탄방어에 나서

신기남, 당의장 사퇴로 넘어갈 일인가?

사꾸라꽃 만개할 거대여당, 열린우리당
이전글 : 살인의 추억 비밀 - 부패의 원흉
다음글 : 문경시 공무원이라고 하면 다 되는줄 아냐구요?